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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젠틀몬스터가 먼저 알아본 아티스트, 맥스 시덴토프 전시 Seriously Not Serious 방문 후기

 
맥스 시덴토프라는 이름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서울에서 볼 만한 전시를 찾다가 우연히 작품 이미지를 몇 장 봤는데, 익숙한 일상의 장면을 이상하고 유쾌하게 비틀어 놓은 방식이 꽤 흥미로웠다. 게다가 전시 장소는 서울역 인근에 새롭게 문을 연 그라운드시소 센트럴. 공간도 궁금하고 작가도 궁금해서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방문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관람한 전시 중 가장 즐겁게 본 전시 중 하나였다.
단순히 작품을 벽에 걸어두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영상, 설치, 조각, 광고 작업과 관객 참여형 콘텐츠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 제목인 처럼 진지한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 전시였다.
 
 

맥스 시덴토프는 누구일까?

 
맥스 시덴토프는 독일에서 태어나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컨셉추얼 아티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일상 속 익숙한 사물과 상황을 엉뚱하게 재구성하고, 그 안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풍자적인 시선을 담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순수 미술뿐 아니라 광고와 패션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젠틀몬스터, 구찌, 제니 등과 협업했고, 국내에서는 젠틀몬스터와 누데이크를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공간 '하우스 노웨어'에서도 그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전시를 보고 나면 왜 감각적인 브랜드들이 그를 좋아하는지 바로 이해된다. 작품마다 한눈에 시선을 붙잡는 비주얼과 살짝 불편하면서도 웃긴 아이디어가 공존한다.
 
 
 

자기 자신마저 작품으로 만든 작가

 
첫 번째 본격적인 섹션인 'Hello, My Name Is Max'에서는 작가 본인을 소재로 한 작업들을 볼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 중 하나는 '애프터 파티'다. 맥스 시덴토프가 소파에 쓰러져 잠든 채 얼굴에 형형색색의 낙서가 그려진 모습을 극사실적인 조각으로 구현했다. 보통 자화상이라고 하면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는데, 시덴토프는 파티 다음 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자화상으로 제시한다. 예술가와 자화상이 지녀온 전통적인 권위를 가볍게 무너뜨리는 방식이 재미있었다.
 
전시장 곳곳에서 작가는 자신의 몸과 얼굴을 거리낌 없이 작업의 재료로 사용한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전시 전체를 관통한다.
 
 
 

인간의 재치를 보여주는 협업 프로젝트

 
'Friends' 섹션에서는 여러 사진작가와 함께한 협업 작업을 볼 수 있다.
 
맥스 시덴토프가 간단한 스케치를 보내면, 사진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해석해 실제 사진으로 완성한 프로젝트다.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결과물은 작가마다 완전히 달랐다. 사진가의 개성과 엉뚱한 상상력이 드러나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권 사진 속 얼굴 영역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상상한 사진도 재미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단정한 모습과 실제 상황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화상회의를 할 때 상의만 제대로 입고 아래에는 편한 바지를 입었던 순간이 떠올라 유독 공감됐다.
 
 
 

웃다가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

 
'Mature Content'라는 제목의 공간에는 나이 든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시대정신'이었다. 한 노인이 자신이 서 있는 구석까지 페인트칠해 버려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극사실적인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인간 사회가 자신이 만들어 낸 문제에 갇혀 버린 상태를 은유한다고 한다.
앞선 작품들을 보며 계속 웃고 있다가 이 조각과 마주하니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맥스 시덴토프의 작업은 대부분 유쾌하지만, 가끔 이렇게 웃음이 멈추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8만 개의 퍼즐을 함께 맞추는 공간

 
'It Takes a Village'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설치 작품이다.
 
바닥에는 작가의 아이 사진으로 제작된 거대한 퍼즐이 놓여 있고, 관람객은 8만 개의 퍼즐 조각 중 하나를 찾아 직접 맞출 수 있다. 조각 뒷면과 퍼즐 판에 번호가 적혀 있어 같은 번호를 찾으면 된다. 퍼즐을 잘하지 못해도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실제 전시장 안의 풍경으로 구현한 셈이다.
 
사람들이 퍼즐을 꺼내고, 섞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 과정까지 모두 작품의 일부처럼 보였다. 정돈되지 않은 현장마저 하나의 작은 마을 같아 재미있었다.
 
 
 

가장 좋았던 시리즈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공간은 'Beware of Reality'였다.
이곳에서는 작가의 영상 프로젝트 시리즈를 감상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아름답고 감각적인 광고 영상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기괴하고 이상한 장면이 이어진다. 현대인의 불안과 허영, 진지함과 어리석음이 동시에 담겨 있다. 영상의 색감과 미장센도 굉장히 뛰어났다. 영화 <비바리움>, <미드소마>, <킬링 디어>처럼 정돈된 화면 안에서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는 작품을 좋아한다면 특히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광고와 순수 예술의 경계에 있는 듯한 비주얼이 인상적이었다. 맥스 시덴토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도 주목받은 이유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붙는 이름표

 
영상 공간을 지나면 새하얀 전시장 안에 수많은 달걀이 놓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은 '선천적 vs. 후천적'.
동일하게 생긴 달걀 1,003개에 '승자', '패자', '시인', '불량배', '허세꾼' 등 각기 다른 정체성을 뜻하는 라벨이 붙어 있다.
 

 
아직 껍데기조차 깨지지 않은 달걀에 완성된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써, 사람의 운명과 성격이 언제 결정되는지를 질문한다. 우리가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표는 본질을 반영하는 것일까. 환경의 결과일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일까.
 
재미있는 점은 이 달걀 작품을 실제로 구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판매된 라벨에는 품절 표시가 붙어 있었다.
나도 기념으로 하나 사볼까 생각했지만 가격을 확인한 뒤 조용히 휴대폰을 닫았다. 
 
 

작가를 직접 그려보는 크로키 체험

 
전시 후반부인 'CLI"MAX"'에서는 거대한 맥스 시덴토프 조각이 등장한다.
 
작가 본인이 흰색 속옷만 입은 채 대형 조각이 되어 서 있고, 주변에는 이젤과 그림 도구가 놓여 있다. 관람객이 작가를 모델 삼아 직접 크로키를 그리는 참여형 작품이다.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 앞에 작가가 스스로 거대한 피사체가 되어 나타난다는 발상이 대담하면서도 웃겼다.
 
평소 미술 영화나 드라마에서 크로키 장면을 볼 때마다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도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려봤다. 결과물은 예상보다 훨씬 처참했다. 그림을 몇 년 만에 그려본 탓이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어린 시절 미술학원을 한 달 다닌 뒤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던 선택이 꽤 정확했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했다.
 
 

 
완성된 그림은 제출할 수 있고, 잘 그린 작품은 전시장 벽에 실제로 전시된다. 다른 관람객들의 재치 있는 그림을 구경하는 것도 이 공간의 재미 중 하나였다.
 
 
 

굿즈샵도 전시의 연장선

 
전시를 모두 보고 나면 굿즈샵으로 이어진다. 전시 자체는 좋았지만 막상 사고 싶은 물건은 없는 굿즈샵도 많은데, 이번 전시는 실용적이면서 귀여운 제품이 많아 참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의 캐릭터와 작품을 활용한 아이템이 다양했고, 굿즈를 소개하는 방식에서도 전시의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맥스 시덴토프 전시 솔직 후기

 
맥스 시덴토프는 아직 국내 대중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젠틀몬스터와 제니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브랜드와 인물들은 이미 그의 감각을 먼저 알아본 아티스트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영상, 조각, 설치, 광고 작업까지 다양한 매체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퍼즐 맞추기와 크로키처럼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품도 있어 전시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품은 대부분 유쾌하고 장난스럽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웃긴 장면으로 보여주다가도, 어느 순간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 제목처럼 'Seriously'하지만 'Not Serious'한 태도가 맥스 시덴토프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혼자 방문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서로의 그림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커플이라면 데이트 전시로도 추천한다. 작품을 하나씩 자세히 보고 영상까지 모두 감상하니 관람 시간은 1시간 이상 걸렸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팬이 됐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현대미술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맥스 시덴토프 개인전 정보

  • 전시명: 맥스 시덴토프 개인전
  • 전시 기간: 2026년 3월 27일 ~ 8월 30일
  • 장소: 그라운드시소 센트럴
  • 주소: 서울 중구 세종대로 14 그랜드센트럴 3층
  • 관람료: 성인 기준 20,000원
  • 사진 촬영: 가능, 플래시와 셀카봉 사용 불가
  • 유의 사항: 재입장과 역관람 불가, 전시장 내부 화장실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