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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첫 전시 주제가 큐비즘이었던 이유! 화제의 퐁피두센터 한화 방문 후기

 


여의도에 문을 연
퐁피두센터 한화의 첫 전시를 보고 왔다.

개관전의 제목은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를 중심으로
큐비즘이 어떻게 시작되고 변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처음에는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을
가볍게 둘러보는 전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작품 수가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큐비즘이라는 하나의 미술 사조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구성에 가까웠다.

솔직히 중간쯤에는
이거 도대체 언제 끝나..? 싶을 정도였다.ㅎ

그만큼 양은 많지만,
큐비즘을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꽤 알찬 전시였다.



이상한 그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큐비즘을 생각하면
보통 피카소의 인물화를 먼저 떠올린다.

얼굴의 정면과 옆면이 한 화면에 섞여 있고,
눈과 코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있다.
사람과 사물은 각진 조각처럼 해체돼 있어서,
미술을 잘 모르면 어렵고 이상한 그림처럼 보이기 쉽다.

이번 전시는 결과만 보여주는 대신
그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순서대로 설명한다.





세잔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 사물을 단순한 덩어리로 표현했던
초기 단계부터,
대상을 작은 면으로 잘게 분해한 분석적 큐비즘,
신문지나 벽지 등을 화면에 붙이기 시작한
종합적 큐비즘까지 흐름이 이어진다.

작품을 차례로 보다 보면
처음에는 전혀 알아볼 수 없었던
소재나 인물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도대체 왜 기타지?”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앞뒤 작품과 연결되면서 이해되는 순간이 있었다.

교과서에서는 큐비즘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한 화면에 표현한 미술
이라고 짧게 배우지만,
실제 작품들을 나란히 보니
그 문장의 의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피카소와 브라크 외에도
큐비스트가 이렇게 많았다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놀랐던 건
큐비즘에 참여했던 작가의 수였다.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 외에도
후안 그리스, 페르낭 레제, 장 메챙제,
알베르 글레즈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등장한다.





알고 있던 이름보다 처음 보는 이름이 더 많았다.
생각보다 많은 작가가
당대 전시와 토론에 참여하며
하나의 커다란 움직임을 만들고 있었다.

작품들이 시대순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작가마다 형태를 분해하는 방식과
색을 사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랐는지도 비교할 수 있다.

다만 작품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모든 설명을 꼼꼼히 읽으면 관람 시간이 꽤 길어진다.
큐비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후반부에 조금 반복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쾌적한 새 미술관,
조금 헷갈리는 관람 동선



퐁피두센터 한화 내부는
새로 개관한 공간답게 깔끔하고 쾌적했다.

층고가 높고 전시실도 넓어서,
작품이 많이 걸려 있는데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바닥과 흰 벽, 높은 천장이 만들어내는 대비도
현대미술 작품들과 잘 어울렸다.

새 건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반짝반짝한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관람 동선은 살짝 아쉬웠다.

한쪽 방향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개의 평행한 벽면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보는 방식이다.

한 줄을 본 뒤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다시 뒤쪽 벽을 확인해야 해서
꼼꼼히 보려면 전시실 안을 여러 번 돌아다니게 된다.

공간 자체는 넓고 편안하지만,
작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려는 사람에게는
동선이 아주 직관적이지는 않았다.



의외로 가장 기억에 남은
코리아 포커스 존


전시의 중심은 유럽 큐비즘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한국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코리아 포커스 섹션이었다.

이 공간에서는 서구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900년대 한국 작가들은
유학이나 일본을 통해 서양 현대미술을 접했고,
그 과정에서 들어온 큐비즘의 조형 언어를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박영선의 《소와 여인》과 《파리의 서커스》,
김환기의 《종달새 노래할 때》,
박래현의 《고양이》를 비롯해
유영국과 하인두 작가 등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 있었다.

작가의 국적을 모르고 그림만 봤다면
유럽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큐비즘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품도 있었다.

인물과 동물, 한국의 풍경과 생활 속 소재들이
작가의 방식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돼 있었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미술 언어가 한국에 들어온 뒤
어떻게 번역되고 변형됐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컸다.

피카소를 보러 갔다가
한국 작가들의 그림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전시를 일반적인 해외 명화 전시와 다르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섹션이라고 느꼈다.



큐비즘의 확장을 멈춘
1차 세계대전

 


전시 후반부에서는
큐비즘과 전쟁의 관계도 다룬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여러 작가가 군에 동원됐다.

조르주 브라크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고,
페르낭 레제 역시 군 복무를 경험했다.
(반면 스페인 국적이었던 피카소는
프랑스군의 징집 대상이 아니었다)

전쟁은 작가 몇 명의 작업을
잠시 멈추게 한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함께 전시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확장되던
큐비즘의 흐름 자체가 전쟁으로 인해 흩어졌다.




전쟁으로 인해 중단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퐁피두센터 한화를 둘러싼 아트워싱 논란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개관 전후로 일부 예술가와 시민단체는
방산 계열사를 둔 한화그룹과
퐁피두센터의 협력을 비판했다.
정문 인근에는 시위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방산기업이 문화예술 사업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후원을 아트워싱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단순한 접근일 수 있다.

반대로 수준 높은 전시를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기업의 사업과 책임에 관한 질문을
무시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기업의 문화 후원을
어디까지 독립된 활동으로 볼 수 있는지,
방위산업과 예술기관의 협업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지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개인적으로도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전쟁으로 흩어진 큐비즘 작가들의 작품을
미술관 안에서 보고,
미술관 밖에서는 다시 전쟁과 예술의 관계를 묻는
시위를 마주하게 된 상황은 꽤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다음 전시가 궁금해지는 공간


퐁피두센터 한화의 첫 전시는
작품 수와 구성 면에서 꽤 묵직했다.

큐비즘의 유명 작품만 골라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큐비즘이 등장하고 확장된 과정과 전쟁 이후의 변화,
한국 미술에 미친 영향까지 폭넓게 다룬다.

가볍게 사진 몇 장 찍고 나오기에는 조금 긴 전시지만,
한 가지 미술 사조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만족도가 높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전시 공간도 마음에 들었고,
첫 주제로 큐비즘을 선택한 것도
괜찮은 출발이라고 느꼈다.

피카소의 이름을 앞세우면서도
조르주 브라크와 후안 그리스, 페르낭 레제 같은
작가들을 함께 소개하고,
한국 근현대미술까지 연결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퐁피두센터 한화가
어떤 소장품과 주제로 다음 전시를 구성할지 궁금하다.







[전시 정보]

  • 전시명: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 전시 기간: 2026년 6월 4일~10월 4일
  • 장소: 퐁피두센터 한화
  • 주소: 서울 영등포구 63로 50, 63빌딩 별관
  • 가격: 성인 28,000원


※ 운영 시간과 휴관일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예매 페이지에서
꼭 다시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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